민설진이라는 3학년 연극반 선배였어. 혜린이가 쳐다보는 사람이니까 나도 자세히 관찰을 했지.
그는 여자애들에겐 인기가 좋게 생긴 사람이었어. 키도 크고 허우대도 멀쩡하고. 솔직히 말하면 난 그런 남자들은 좋아하지 않아. 우리 엄마가 어려서부터 그러셨거든. 여자나 남자나 인물이 좋으면 언젠가는 꼭 인물 값을 한다고. 형편없이 생긴 딸을 위로하기 위한 속셈이었는지는 몰라도 어려서 하도 여러 번 들은 소리라 주입이 된 거 있지.
선입견을 갖고 봐서 그런지 민설진 선배란 인물도 왠지 바람꾼처럼 보였어.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하게 구는 것도 영 마음에 안 들더라구. 연극반에선 꽤 알아주는 사람이라는데 모르지 뭐. 더 두고 봐야지.
오늘은 주제를 잡고 문학반 아이들이 대본을 만들고 연극반 아이들이 연극으로 꾸미는 계획을 세웠어. 그래서 기초 작업으로 어떤 주제를 잡을 것인가를 토의했지.
여자애들은 하나같이 연애를 주제로 잡자고 하고, 남자들은 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하자고 했는데 알고 보면 속이 뻔히 보이는 거 아니겠어.
설진 선배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는 혜린이에게 물었어.
"거긴 할 얘기 없나?"
항상 웃는 얼굴이던 혜린이가 아무 표정도 없이 빤히 설진 선배를 바라봤어. 왜 나에게 질문을 하냐는 눈으로.
"할 말이 있을 거 같아서."
무안해진 설진 선배가 한마디 했지.
"전 무엇엔가 미친 사람들 얘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모두 혜린이에게 눈길이 쏠렸지. 느닷없이 미친 사람들 얘기라니. 킥킥거리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호기심에 가득차서 혜린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어. 하지만 혜린이는 쉽게 입을 열 기세가 아니어서 기다리다 못한 설진 선배가 다시 말을 시켰지.
"왜 그런 주제를 하고 싶지?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겠니?"
혜린인 다시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 어렵게 입을 열었어.
"사람들은 모두 무엇엔가에 미쳐 있는 게 아닐까요. 살기 위해서 그래야 하니까. 권력에서 놓여나기 위해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만들어 집착하면서 살아가죠. 그래야 자살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연애도 그렇고, 성도 그렇고, 어쩌면 환상인지도 모르죠. 미치기 위한."
선배들이 고개를 끄덕였어. 1, 2학년들은 서로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고. 근데 이상하게도 난 그순간 혜린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에 빠졌어. 정확하게는 설명할 수 없지만 가느다랗지만 단단한 끈이 우리 둘 사이에 엮어져 있는 느낌이 든 거야.
혜린이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애가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달리 강한 아이만은 아닐 거 같은 느낌이 말야.
설진 선배가 혜린이에게 눈을 떼어 내지 못하면서 말했어.
"연극적인 대산데. 차라리 문학반 그만두고 연극반으로 오는 게 어때?"
그때 혜린이가 싸늘한 미소를 띄우며 차갑게 말했어.
"그런 식으로 자신을 숨기는데 익숙한 사람인 거 같군요."
설진 선배의 얼굴이 순식간에 확 굳었지.
우린 둘이 사이코 드라마라도 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회장인 혁수 선배가 오늘은 이만하자고 쫑을 냈어. 가만히 보면 혁수 선배가 괜찮은 남자인 것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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