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돌아왔더니 사건이 하나 터져 있더라.

 

그 사건의 주인공은 우리의 지젤, 도야였어.

 

너도 봤니? 난 서울에 와서 처음 봤는데. 그 있지, 잘 생긴 남자가 춤추다가, 아니면 뛰던가 하여튼 의자도 넘어뜨리고 그러면서 신발 선전 하는 거. 난 처음에 저게 거울 선전인가 무용 학원 선전인가 되게 헷갈렸는데.

 

글쎄 우리의 푸짐한 지젤이 그 선전을 흉내낸다고 의자를 박살낸 거야. 그것도 깐깐한 유경이 의자를. 자기도 내심 불안했나 보지. 자기 의자를 사용하지 않은 걸 보면. 유경이가 펄펄 뛰면서 도야를 몰아붙였어.

 

"넌 할 게 따로 있지. 네가 가당키나 하니? 네가 올라서는데 무사할 의자가 어딨어. 그리고 하필이면 왜 내 의자니. 너 나한테 쌓인 거 있었니? 왜 남의 의자를 저 꼴로 만들어 놓는 거야."

 

바락바락 소리지르는 유경이 앞에서 도살장에 끌려온 도야지처럼 풀 죽어 있던 도야가 씩 웃으면서 그랬어.

 

"네 의자 참 약하더라."

 

오, 불쌍한 지젤. 자신의 몸무게는 생각지도 않고 튼튼했던 의자를 모욕하다니.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들이 사용하는 의자는 나무가 소재긴 하지만 장정 한 명이 올라가서 난리 부루스를 춰도 까딱도 안 할 정도라구.

 

기가 막힌 유경이가 머리를 쥐어 뜯으며 히스테리를 부렸어.

 

"내가 못 살아. 정말 내가 못 살아. 의자가 약하다구? 너 내가 솔직하게 말하는데 네가 내 위에 자고 있다는 게 얼마나 불안한지 알기나 하니? 내가 얼마나 불안했으면 악몽을 다 꾸냔말야. 혹시 자다가 뭉게지는 거 아닐까 하고."

 

도야가 유경이 침대 윗층을 쓰거든. 애들이 아래서 자라고 그렇게 애원을 했건만, 자긴 뭐 위에서 자는 게 편하다나 어쨌다나. 원래 남 공포에 떨게 하는 데 희열을 느끼는 애들 가끔 있잖니 왜. 도야 덕분에 유경이가 공포에 휩쌓여 사는 거지.

 

"설마 침대가 무너지려구. 난 너희가 생각하는만큼 무겁지 않아."

 

가만히나 있으면 밉지나 않지. 도야가 허리에다 손을 턱 얹고 자기 몸무게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는 거야. 그러면서 자기 어깨를 주물러 대며 아주 나약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

 

"너희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이거 알고 보면 다 물살이다. 왜 있잖아. 두부살. 나, 뼈는 가느다랗다. 얼마나 가늘다구. 성숙기에 접어들면 그냥 빠질 살이야. 만져 봐. 만져 봐. 꾹꾹 들어가지?"

 

나한테 자기 팔을 만져 보라고 엉겨 붙는 거야. 제일 만만한 게 나라는 얘기지. 나 말고 바보처럼 도야 팔을 정말 만져 볼 인간은 우리 방에 없거든.

 

"내 말이 맞지? 물렁물렁하지?"

 

난 할 수 없이 애들 눈치를 보면서,

 

"조금 물렁거리는 거 같기도 하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야는 의기양양하게 애들을 향해 환희에 찬 미소를 보내며 주절거렸어.

 

"거 봐. 거 봐. 순 물살이라니까. 금방 빠질 살이야."

 

더는 못 참겠는지 유경이가 끼어들었어.

 

"누구 팔뚝은 철갑무적이니. 눌려서 안 들어가는 살 봤어. 너, 자 봐. 나도 들어가지. 선경이 얘 팔도 들어가지. 지원이 얘도, 보자보자 하니까..... .

 

도야가 약간 머쓱해 하자 유경이가 기회는 이때다 하고 아예 본론을 들고 나오는 거야.

 

"너 침대 바꿔. 위에서 자는 너만 생각해도 소름이 다 끼쳐. 의자 부순 건 어쩔 수 없다치지만 자다가 너한테 눌려 죽는 건 도저히 못 하겠다."

"그럼, 난 어디서 자라구?"

"네가 아래서 자."

"싫어. 난 위가 좋아. 갑갑한 건 죽어도 싫단 말야. 침대 받침 위에 다른 사람 엉덩이가 있겠구나 생각해 봐. 어휴 답답해."

"그럼 지원이 침대랑 바꿔."

 

침대 두 개는 2층 침대고 하나는 단층 침댄데 유별나게 굴고 싶어하는 지원이가 떼를 써서 그걸 사용하고 있었거든. 유경이 얘기는 지원이 침대와 바꾸라는 거야. 근데 우리의 유별난 깍쟁이가 그 말을 그대로 듣고만 있겠니.

 

"왜, 내 침대하고 바꾸니. 이건 내 거야. 처음부터 그러기로 했잖아."

 

유경이와 지원이가 한참 티격태격했지만 결론은 내 위로 도야가 오기로 결정이 났어. 그래도 약간 모자라는 듯한 나와, 그림 외에는 아무 일에나 핏대 세우기를 꺼려하는 선경이가 넓은 마음으로 방의 평화를 위해서 양보한 거지. 유경이 위로 옮겨간 선경이보다는 도야의 무게에 떨면서 자야 하는 내가 조금 더 마음이 넓은 거겠지.

 

밤에 잠들기 전까지 도야가 누은 자리가 아래로 꺼질 거 같은 불안감에 가슴을 졸여야 했어.

 

아, 잠이나 자자. 자다가 죽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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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riu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