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 주경이 알지.
걔가 알고 보니 좀 특이체질이던 거 있지. 하루에 한 번씩 이상형의 남자가 바뀌는 거야. 어제는 옆반, 미술반의 반장 남자애한테 뻑 가 있더니, 오늘은 2학년 무용반 빼빼한테 넋이 나가고.
근데 또 그게 이틀을 가는 경우가 거의 없어. 아침마다 나를 붙잡고, <오늘 걔를 처음 봤는데 죽이더라> 로 시작하는 다양한 애정편력을 과시하는데 내가 죄가 많아서 그런지 헷갈려. 저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몰라.
그런데 또 하나 광적으로 집착하는 게 있어. 성적이야. 나참 세상에 시험 안 본다고 입을 삐죽거리는 앤 우리나라에서 주경이 하나일 거야.
"시험 안 보는 학교가 어딨니. 한 학기에 겨우 시험을 두 번 본다는 게 말이나 되니. 원래 공부 잘하는 학교는 시험 횟수가 좌우한다는 격언도 모르나."
시험 안 보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내가 비정상인지.
"시험을 안 보면 누가 어떤 앤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이 말이야."
얘가. 이건 또 무슨 횡설수설이야. 시험 안 봐도 난 지가 애정 편력의 특이체질이란 걸 잘도 아는데.
"시험을 봐야 애들이 쟤가 1등한 걔지 뭐 그러는 거 아냐. 남자 애들한테 내가 누군지,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알려 줘?"
"너 그럼 중학교 때 계속 1등만 했니?"
"응."
오, 이런 천재와 내가 짝이 되었다니. 난 중학교 때, 그것도 이름 없는 시골 학교에서 겨우 중간이나 매달려 달리던 실력이었는데. 이런 어마어마한 인물과 짝이라니. 그럼 얘니 시험 한번만 보고 나면 날 무슨 동물원의 침팬지 정도로 여길 거 아냐.
오, 신이여. 제발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험을 한번도 보지 않게 해주시거나, 짝을 바꿔 주소서.
"주경아. 넌 정말 특이체질인가 봐."
"왜?"
"우리 중학교 때 공부 잘하는 애들 보면 굉장히 내숭떨던데. 시험만 본다고 하면 공부 못 하는 애들보다 더 바짝 얼어서 시험날 아침마다 공부 하나도 못했다고 엄살도 떨고...... ."
"얜, 지금이 어느 시댄데, 그런 구시대 얘길 하니. 요즘은 자기과시 시대야. 능력 있는 걸 왜 속이니. 속 뒤집히게. 공부도 잘해야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도 잡는 거라구."
그럼 나 같은 앤 평생 내 마음에 드는 남자한테 접근도 하지 말라는 얘긴가. 얘가 가만히 보니까 사람 여럿 기죽이겠네.
어쨌거나 난 갑자기 주경일 존경하기로 했어. 주경이 말에 의하면 문학은 천재들이 하는 거래. 이 부분은 나의 지금까지의 생각을 완전히 깨부수는 거였어. 난 글이란 얘기꾼들이 쓰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왜 우리 할머니들이 옛날 얘기 잘 해주셨잖아. 그분들이 글을 배우셔서 모두 소설을 썼다고 생각해 봐. 그게 곧 문학 아니었을까. 이거야말로 촌뜨기의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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