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밤에 이애는 정원 앞 불빛 아래서 울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아직도 밤이면 추위를 타는 이밤에 얜 여기 앉아 무엇을 생각하며 그 고운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일까.

 

"혜린아."

 

내 목소리에 혜린이가 천천히 고갤 돌렸어. 한밤중의 나의 출현이 놀랍지도 않다는 담담한 얼굴로.

 

"안 자고 왜 나와 있니? 춥지 않니?"

 

혜린인 자기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어.

 

"무슨 일 있니?"

 

그앤 그저 멀리 보이는 학교 건물만 바라보고 있었어. 난 그때서야 그 건물 중의 한 교실에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어. 토요일 밤인데 누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일까.

 

불빛은 실기관 2층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어. 혜린인 그 불빛을 보고 있었던 거야.

 

"누구지? 아직까지 실기관에...... ."

"민설진이야."

 

혜린이가 처음으로 말을 했어. 그제서야 볼이 차가왔던지 흠짓 놀라며 볼의 눈물을 닦았어.

 

"연극반 민설진 선배?"

 

혜린인 대답하지 않고 계속 그 불빛만 바라보고 있었어.

 

"너 우니?"

"그랬던가 봐."

"왜?"

 

혜린이가 피식 웃었어. 힘이라곤 조금도 없는 듯이.

 

"내가 묻는 게 싫으니?"

"아니. 갑자기 저 불빛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저 사람은 미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거 느꼈거든. 그건 아름다운 거니까."

"슬퍼서 운 게 아니니?"

"슬프면 우니? 슬프면 화를 내면 되는 게 아닐까?"

"글쎄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퍼서 우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관념이 부럽다."

 

난 혜린이가 우리와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내 또래의 동갑나기인가 싶어졌어.

 

걘 우리가 보지 않고 있는 먼 곳을 향햬 고개를 들고 있는 외로운 사슴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무 통속적인 표현이었나. 하지만 통속 자체가 진리가 되는 게 아닐까.

 

그래, 난 촌뜨기야.

 

"너...... ."

 

난 차마 다음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혜린이가 너그러운 표정으로 어떤 말이라도 물어 보라는 시선을 보냈어.

 

"너, 설진 선배 좋아하니?"

 

그런 심각한 질문에 혜린이처럼 어이없게 웃는 애가 있을까.

 

"내가 너무 유치하지?"

"아니. 네가 보기엔 충분히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이밤에 여기 앉아서 저 불빛을 보고 눈물까지 흘렸으니 말야. 내가 말했었지. 사랑을 해야겠다고. 그러고 싶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무언가에 매달리고 싶어.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마라톤 선수처럼. 그런데 난 그게 잘 안 돼. 언제나 목적이 우선하니까."

"무슨 목적?"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린다는. 그런데 짐을 풀기 위해 또 떠날 준비를 하는 거야."

 

난 내가 머리가 좋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대화에 단절이 올 정도로 저능아인지는 몰랐거든.

 

근데 혜린이의 얘기를 들으면서 왜 자꾸 저능아 같은 열등감에 빠지지.

 

"네 얘긴 너무 어렵다. 잘 못 알아 듣겠어."

"거봐, 이게 내 병이야. 언제나 혼자 깊은 늪을 파지. 결국은 그 늪 속으로 나만 걸어들어갈 거면서."

 

난 잠시 혜린이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가만히 내버려두기로 했어. 얼마쯤이나 지났을까, 혜린이가 크게 기지개를 켰어. 아침에 눈을 뜬 꼬마처럼.

 

"아, 저 불빛은 정말 아름답다. 저 불빛이 있는 동안만이라도 떠날 준비를 하지 않았으면...... ."

"어디론가 떠나고 싶니?"

"아니."

 

얘가 왜 이렇게 날 저능아로 몰지. 내가 얠 친구로 하고 싶다는 게 주제넘은 희망이었나.

 

"난 떠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야. 떠나면 계속 떠돌아야 할 테니까. 쉽게 떠나선 안 되지. 자, 들어가자. 저 불빛은 오래 보고 있으면 슬퍼질 수 있어. 모든 건 거리가 있을 때 의미를 갖는 법이지."

 

우린 나란히 기숙사로 들어와 복도에서 잘 자란 인사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어.

 

난 읽던 <생의 한가운데> 를 덮고 침대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았어. 머리 속이 복잡해서 쉽게 잠이 와 주지 않아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때까지 그러구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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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riu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