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방에서 처음으로 남자애에게 편지를 받는 애가 생겼어.

 

다름아닌 깐깐이 이지원이야. 남자애들은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형편없는 것인지.

 

그 편지를 받는 순간에 내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왜 내가 편지를 받았냐구.

 

내가 감격스럽게도 배달부로 발탁된 거지.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걸어오던 길이었어. 나보다 한뼘 정도 큰 여드름장이가 쭈뼛거리며 줄레줄레 쫓아오지 뭐야.

 

난 관심은 없었지만 또 누가 아니. 나도 남자 애들한테 관심을 끌 뭔가를 가지고 있는지.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 녀석이 쫓아오기 적당할 정도로 사이를 두고 천천히 걸었어. 짜식, 수줍긴.

 

기숙사에 다 와 가는데 빨리 말 한 번 시켜야 되는 거 아냐. 내가 말 시키면 튕기기라도 할 거 같은가. 아냐. 한두 번은 튕겨야 매력이 있는 거라고 주경이가 그랬는데. 두 번까지는 뭐하고 한 번만 빼는 척해?

 

짜식. 빨리 말을 걸어. 기숙사에 다 왔단 말야. 너 기회는 찬스다.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녀석이 급하게 앞을 가로막는 거야.

 

"저어 3호실 맞죠?"

 

음, 내가 어느 방에 있는지도 알아 뒀구나. 녀석, 세심하긴. 그동안 얼마나 속을 태웠을까. 이름도 모르면서 안타까와했을테니.

 

난 한 번 튕길 자세를 갖추고 똑바로 쳐다봤어. 주경이가 그랬거든. 여자는 눈빛이 강해야 한다고. 눈빛으로 이기면 뒤는 일사천리라는 거 아냐.

 

목소리에 힘을 줬지.

 

"네. 그런데요?"

 

녀석이 내 눈빛에 기가 죽었는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묻는 거야.

 

"저, 그 방에 이지원이 있죠? 음악반이구."

 

아니, 애가 갑자기 왜 지원이 얘기는 꺼내지. 아, 지원이랑 같은 음악반인가 보구나. 그래 그러고 보니 음악반에서 본 것도 같은데. 기지배, 안 그런데 밖에 나가선 애 칭찬을 하고 다니나 보구나. 애가 참하다고. 겉보기엔 그저 그렇지만 알고 보면 꽤 괜찮은 애라구.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한테나 친절해야 되는 거야. 그럼 손해볼 일은 없으니까.

 

"네, 지원이가 우리 방인데요."

 

난 여전히 콧대를 세우고 있었어.

 

"저 그럼 이것 좀 전해 줄래요."

 

그러면서 가방 속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서 건내 주는 거 있지.

 

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했어. 부끄러워서 나한테 준다고는 못하고. 그래도 그렇지. 내 편지를 지원이한테 주면 어쩌려구.

 

난 확인을 해야 했어.

 

"솔직히 말해요. 누구 주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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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riu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