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눈치를 재빨리 살폈더니 이게 무뎌도 되게 무딘 인간이야.

 

마음에 있었으면 답장도 안 하고 그러겠어. 답장은 안 하면서 방 친구한테는 <걔 죽이지. 나 너무너무 맘에 들어> 그러리라고 기대를 했나.

 

난 솔직해지기로 결심했어. 뭔가 확실하게  해줘야 빨리 정리하고 밥이라도 먹고, 잠이라도 잘 거 아냐. 먹는 게 남는 거라는 말도 있는데.

 

"댁을 생각해서 솔직하게 말해 주는 거예요. 지원이가 그랬어요. 이런 애들 때문에 못 살겠다고. 그리고 이건 안 해도 될 말이지만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라고 해주는 말인데요. 댁 편지 갈기갈기 찢겨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어요. 아마 지금쯤 그 편지 쓰레기 하치장에 있을 거예요."

 

내가 너무 잔인한 건가. 아니야. 내가 잔인해져서라도 얘 밥은 먹게 해줘야지.

 

내 말을 다 듣더니 그 녀석이 어땠는 줄 알아. 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데도 그런 표정은 아닐 거야. 바로 눈앞에서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얼굴로 인사 한마디 없이 돌아서는 거야.

 

난 잠시 갈등했어.

 

쫓아가서 내가 한 말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저러다 밥을 먹기는커녕 먹은 밥까지 쏟아내는 게 아닐까.

 

그래도 할 수 없다, 얘야. 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성숙하는 법이란다. 노래 가사도 있잖냐.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지금에야 밥도 안 넘어가겠지만 조금만 지나 봐라. 지금 못 먹은 거 보상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먹어 대지.

 

얘야, 이 조숙한 인간의 말이 맞다는 걸 먼 훗날 알게 될 거다. 나야 뭐 알아서 하는 말이니. 다 책에서 읽고 대충 각색해서 그러는 거지.

 

그날 밤 그 녀석이 드디어 일을 냈어.

 

뭐? 자살이라도 했냐구? 그렇게 못난 인간은 아니었나 봐.

 

녀석 때문에 한밤에 놀라 설쳐댄 것 빼고는 속이 시원한 사건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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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riu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