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애가 우리 반이라니.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애한테 그런 애는 완전히 으악, 그 자체였어. 세상에. 세상에.

 

늘 생각은 해왔지만 하느님은 역시 불공평하셔. 못 생겼으면 부잣집 딸이라거나, 키가 작으면 얼굴이라도 눈에 띄게 예쁘다거나, 공부를 못하면 매력이라도 있어야 되는게 공평한 거 아니니. 그런데 이 중에 나한테 해당되는 항목 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불공평하다고 억울해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얼굴이 썩 이쁘니, 키가 크니,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니, 매력이 있니, 거기다 부잣집 딸이길 하니.

 

왜 이렇게 흥분했냐구?

 

나도 웬만하면 이러지 않겠다. 그런데 이건 해도 너무하는 거야. 아마 우리 문학반 여자 아이들 대부분이 나처럼 하느님은 불공평하다고 속을 끓일걸.

 

첫수업 시간은 <담임 선생님과의 대화> 였어. 우리 담임 선생님은 너도 아는 국어 선생님인 남기철 선생님이야. 우린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문학반 아이들답게 별명을 하나 지었어.

 

꼽추. 우리 선생님이 육체적으로 하자가 있는 분은 아니지만, 그 얼굴을 보면 신도 참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인물이 저기 또 하나 있구나 싶어지게 생기신 분이야.

 

일류대학을 나오셨으니 두뇌는 그다지 나쁜 축에 속하진 않는 게 분명한데, 인물을 보면 에구 공부라도 못했으면 지금 뭐가 됐을까 저절로 걱정이 생길 정도로 아니올시다인 거 있지.

 

그런데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문학 작품 속의 인물이 <노틀담의 꼽추> 라지 뭐야.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하는 인물이지. 그래서 그냥 꼽추가 됐어.

 

꼽추께서 첫시간이니 서로에 대해서 좀더 알아볼 기회로 아이들 모두에게 자기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나 그 외의 문학 작품을 줄거리면 줄거리, 주인공의 성격 묘사면 묘사 등등 알아서 해보라고 하시더라. 애들은 역시 예술학교라서 틀리긴 틀리구나 하는 얼굴로 첫인상을 반 아이들 가슴에 콱 심어 주려고 온갖 폼을 다잡고 목소리에다 무게를 탁 얹고, 스스로에게 도취까지 돼서 이 얘기 저 얘기 늘어들 놨어.

 

나라고 통뼈도 아니고 해서 <어린 왕자> 얘기를 했지. 그런데 웃기는 건 나말고 어린 왕자 얘기를 하는 애가 나까지 자그마치 7명인 거야. 참 신선하지도 못하지. 남이 한 얘기는 피해가면 안 되는 거야. 뭐야.

 

그렇다고 내가 어린 왕자 얘길 처음 한 거냐 하면 그건 아니야. 꼽추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머리 속에 떠오른 건 오로지 <어린 왕자> 하나라서 앞의 두 애가 그 얘길 했어도 설마 나말고 누가 또 하랴 싶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절주절 읊조렸는데 뒤에 4명이나 또 그 얘길 하는 거 있지 뭐니. 그러니 우리 7명은 애들 가슴에 그 애가 그 애로 기억되게 된 거야.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갈 무렵이었어.

 

맨 뒤에 있던 여자애가 교탁 앞으로 걸어나오는데 난 그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어. 우리 반에 저런 여자애가 있다니 싶어서. 늘씬한 키로 또박또박 걸어나오는데 난 혹시 무용반으로 갈 애가 우리 반으로 잘못 온 게 아닌가 의심이 들더라. 하얀 얼굴에 윤기나는 긴 머리, 커다란 눈, 오똑한 코, 입술 얘기는 이 시점에서 빼도록 할게.

 

이렇게 얘기하면 그냥 예쁜 앤가 보다 하겠지.

 

그렇지만 그건 아니야.

 

예쁘면 분위기라도 없어야 공평한 거 아니니. 묘한 분위기, 이게 적당한 표현인지 모르겠네. 어쨌거나 우리 여자애들 기를 확 꺾어 놓은 애가 앞으로 걸어 나가는 거야. 아, 그 순간의 열등감이란.....

 

인생의 문이 열리는 순간에 꼭 그런 애가 나타나서 기죽을 일있어. 난 속으로 기도했어. 저 애도 <어린 왕자> 얘기나 해라. 그래서 신선감 없는 7명에 너도 들어와 다오. 한 명 더 늘려서.

 

헌데 공평하지 않으신 하느님은 내 간절한 바람마저 외면하신 거야.

 

"제 이름은 성혜린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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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riu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