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까지 내 기를 죽이는 거 있지.
허구 많은 이름 중에서 왜 하필이면 흔치 않은 성씨인데다 혜린은 또 뭐야. 흔한 이름 많잖아. 옥분이, 말숙이, 경자, 춘심이, 또 순분이란 이름도 있잖니.
그런데 혜린인 거 있지. 그 다음이 또 걸작이야.
"전 시를 한 편 읊고 싶어요."
그리고선 그 우아한 눈으로 꼽추에게 양해를 구하는 거야. 외모에 열등감이 있는 게 분명한 꼽추는 헤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무려 다섯 번이나 <그럼>과 <좋지>를 연발해서 내 화를 돋구는 거야.
오, 나는 미친 듯이 살고 싶다.
모든 존재를 - 영원한 것으로.
무성격을 -인간적인 것으로.
실현불가능을 - 가능한 것으로.
삶의 무거운 꿈이 짓누르고.
이 꿈속에서 내가 질식당할지라도,
어쩌면, 유쾌한 젊은이는 미래에
나에 대해서 말할지 모르리라.
음울함과 작별하자 - 진정 이것이
그의 숨은 원동력인가?
그는 온통 - 선과 빛의 아이.
그는 온통 - 자유의 승리라고.
이쁘면 목소리라도 나빠야 할 거 아냐. 정말 심하더라. 예쁘면 목소리라도 나빠야지, 눈 씻고 찾아봐도 미운 데는 없지, 귀 닦고 들어 봐도 목소리는 곱지, 미치겠더라.
물기에 젖은 촉촉한 목소리로 머리 긴 어여쁜 소녀가 시를 읊는 모습을 상상해 봐. 그 커다란 눈을 살포시 감고 나직이 읊는 시,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 편의 수채화가 떠오르는 거 있지.
아름다운 수채화, 그래 바로 그 자체였어.
꼽추가 성혜린의 목소리에서 헤엄을 치다가 감격에 겨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어.
"지금 그 시는 누구의 시지?"
우리 모두 다 궁금했어. 생전 처음 듣는 시였으니까.
"알렉산드르 블로끄라는 소련 현대 시인의 <오, 나는 미친 듯 살고 싶다>라는 시예요."
오, 나는 갑자기 그 애가 미친 듯 좋아지는 거야.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과연 몇 번이나 타인을 미치도록 좋아할 수 있을까.
어린시절에 난 우리 집 토담 곁에 쪼그리고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그리워한 적이 있었어.
형체도 느낌도 떠오르지 않는 막연한 그리움, 그 그리움이 가슴을 가득 채우면 그대로 하루종일이라도 쪼그리고 앉아서 멀리 떠나가는 꿈을 꾸곤 했지.
내 그리움을 받아줄 미지의 인간이 존재하는 먼 세계로 말야.
그 세계에 혜린이가 나타난 거야. 가장 소녀답고 청초한 아이란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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