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어. 누군가 하고 나가 봤더니 그 머저리 있잖니. 지원이한테 편지 전해 달라던.
"왜요?"
난 일부러 쌀쌀맞게 대했지. 안 그렇겠니. 누구한테는 편지도 오는데.
"저 아시죠?"
얘가 날 어떻게 보는 거야. 내가 장님이야 뭐야. 한 번 보고 편지까지 임자한테 전해 줬는데 얼굴도 모르겠어.
"알아요."
"저 서준일이라고 하거든요."
누가 저랑 친분관계 맺고 싶다고 그랬어. 갑자기 통성명은.
그런데도 난 맞선 보러 나온 촌색시처럼 갑자기 공손해져서 그랬다는 거 아냐.
"전 정시예예요."
"네, 그건 그렇고."
내 이름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말을 돌리는데, 내가 웬만한 애 같았으면 자존심이 상해서 확 일을 벌였을 거야.
"지원이 아직 안 왔죠?"
"같은 반인데 더 잘 알 거 아니예요?"
"네, 안 왔을 거예요. 지금 연습실에 있거든요."
"그렇게 잘 알면 연습실로 가 보지 왜 애매한 사람을 붙잡고 이래요."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얘가 편지 배달부로도 부족해서 상담역까지 해달라는 거야. 내가 생각해도 정시예 청춘 한심하게 흘러간다.
"지원이가 편지 받아 보고 뭐라고 안 했어요? 답장도 없고해서."
한심한 것도 여러 가지다. 편지 보냈으면 그걸로 됐지 뒷소문까지 수집하고 다니는구나.
"지원이가 제 얘기 안 했어요? 솔직하게 좀 얘기해 주세요. 궁금해서 잠도 잘 안 오고 밥도 안 넘어가고."
"상사병이네요."
"네?"
"병원에 가 보라구요. 늦으면 생명에도 지장이 있으니까."
"네?"
촌뜨기인 내 진솔한 말도 이렇게 못 알아듣는 인간이 있다니. 그렇게 머리가 둔하니 지원이 같은 애한테 편지나 보내고 잠이 안 오느니, 밥이 안 넘어간다느니, 불쌍해 보이려구 안달을 하지.
"지원이가 뭐라고 안 하던가요?"
"왜 안 해요."
갑자기 반색을 하면서 다가들려는 그 머저릴 난 손을 내저으며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했지. 괜히 소문에 말려들 필요 없으니까. 복도엔 아이들이 지나다니는데 웬 외간남자와 방 앞에서 쑥덕거리는 것도 심상치 않을텐데. 코가 닿을 정도로 마주서서 장래에 금가게 할 일 있니.
"이성을 좀 찾으시죠."
점잖게 주의를 환기시켰지. 녀석이 머쓱해 하면서도 지원이가 자기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지 듣고 싶어 좀이 쑤시는 얼굴을 하고 내 다음 말을 기다리더라.
쯧쯧. 이 가엾은 중생을 어찌하리오. 지원이가 했던 대로 말해 주면 혹시 제정신을 차리려나.
"지원이가 그러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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